티스토리 뷰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국내도서>사회과학
저자 : 최훈
출판 : 사월의책 2012.12.10
상세보기


■ 왜 읽었을까?

내가 처음으로 채식에 대해 알게 되고, '채식을 해 볼까?'하고 생각한 것은 8년 전의 일이다.

대학에 들어와 읽게 된 '부엌'이라는 한국 소설에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싫어서 남의 살, 즉 고기를 먹지 않는 인물이 등장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은 했으나, 그 생각이 나도 채식을 실천해야겠다는 결심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고기의 맛을 포기하기에, 또 고기를 먹지 않음으로써 발생될 불편함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3년 전, 내 입 속으로 들어가는 것들이 나를 만들어내기에, 좋은 먹거리를 먹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임을 느끼게 되면서 다시 채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나의 건강을 위해 고기를 줄이고 채소를 많이 먹는 정도였지만, 관련 책들을 통해 '좋은 먹거리'는 단순히 내 몸에 좋은 것만이 아니라 사회와 동물들에게까지 유익한 식품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 고기를 끊고 채식인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채식이 옳기 때문에 무조건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몸과 우리 사회를 위한 일이라는 생각을 해서인지 채식은 그리 힘들지 않았고 오히려 즐겁게 느껴졌다. 물론 생활하다 보면 고민이 되는 상황도 가끔 발생하지만 그렇다고 채식을 그만 둘 이유는 되지 못 했기에, 나의 채식은 3년 째 진행 중이다.

하지만 1년, 2년이 흐르고 채식이 일상화된 후 오히려 채식 자체에는 무뎌진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예전의 내가 아무런 고민 없이 습관적으로 고기를 먹었다면, 이제는 아무런 의식 없이 습관적으로 고기를 안 먹게 되었고, 스스로 채식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이다. 채식을 하고 있으면서도 채식에서 점점 멀어지는 듯한 아이러니한 상황. 나를 다시 채식에 대해 고민하게 해 줄 자극제가 필요했던 터라, 윤리적 관점에서 채식을 이야기한다는 이 책은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어땠냐고?

'죽음의 밥상' 같은 책에서도 윤리적 채식이 나오지만, 그런 책들에서 건강이나 환경과 같은 채식의 다른 이유도 자연스럽게 같이 다루고 있는 데 비해 이 책은 단 하나의 관점만을 가지고 채식을 이야기한다.

저자가 말하는 바는 명확하다. 고통을 느끼는 존재인 동물에게 고통을 주면서까지 내 입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 것이지 그 옳고 그름이 실제로 잘 이행되는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에, 흔히들 많이 하는 '그래도 그게 현실인데 뭘 어떡해?'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책을 찬찬히 읽어나가다 보면, 익숙하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거나 마음의 불편함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논리적으로 반박하기는 어려운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철학자'라는 말이 붙어서 딱딱하고 어려운 책이 아닐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일반 사람들이 읽기 쉽고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쓴 책이었다. 특히 저자가 채식을 하면서 겪은 난감한 상황들은, 채식을 하는 이들에게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채식 이후의 삶을 상상해 볼 기회를 준다. 식습관의 관점에서 지극히 '보통 사람'인 저자도 채식을 실천하는 모습을 읽다 보면, 독자들도 '어 이거 한 번쯤 시도해 볼 만한데?'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다.


■ 무슨 생각을 했냐면...

앞서 말했듯 채식을 한 지 꽤 되었지만, 이제껏 나는 '
윤리적' 채식'주의'라는 말이 빚는 오해('내가 착해서' 채식을 한다는 것 같은 뉘앙스?)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채식인'이라는 말을 쓰고, 채식은 단순히 개인의 취향에서 비롯된 선택인 것처럼 이야기를 해 왔다. 그렇지만 이 책을 통해 내가 채식을 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세상의 수많은 고통을 줄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이상, 이제는 조금 더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의 채식 여부에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채식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함으로써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해 볼 기회를 만들고 싶을 뿐이다. 고기를 먹는 즐거움이나 편리함 등과 같은 이유로 채식을 실천하지는 못 하더라도, 왜 채식을 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 일인지를 알고 있다면 각자 조금씩이라도 고기를 줄이고, 고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고통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좀 단순한 비교지만 이를테면 이런 이야기다. 나는 여전히 일회용품을 사용한다. 종이컵 같은 경우,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것에 비해 가볍고 씻을 필요도 없다는 편리함 때문에 잠깐 망설이다가도 결국은 사용하고 만다.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것이 환경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편리함을 더 우선순위에 놓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일회용품을 쓰는 것이 옳다(=지향할 만하다)고 생각하면서 사용하는 것과,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사용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고 본다. (알면서도 쓰니까 더 나쁜 건가;;)

'윤리적 채식'이라는 말이 주는 거부감이나 불편함을 넘어서,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고 스스로 자신의 먹거리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으면 좋겠다.


■ 이런 분들에게 추천!

- 채식을 한다고 하면 항상 나오는 질문들 "그럼 식물도 생명인데 왜 먹어?" "동물끼리도 서로 잡아먹잖아" "육식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 아니야?" 등등... 스스로 이런 질문을 갖고 있거나, 질문을 받았을 때 명확하게 대답을 해 주고 싶다면
- 건강, 동물사랑, 환경 등 다른 이유에서 채식을 생각해 보았지만 점차 채식을 하는 다른 이유들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면
- 요즘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채식의 배신'을 읽으며 윤리적 채식에 대해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면

 
■ 기억하고 싶은 구절

그러나 이런 얘기를 듣고도 "인생이란 게 원래 그런 거 아냐? 누구나 다 자기 것을 챙기려 하지. 당신은 그렇지 않나?"라고 대꾸하는 사람이 있다면 윤리에 대해 아직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인생이 원래 그렇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인생이 '어떠한가'를 묻는 게 아니라, 인생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철학에서는 사실과 당위의 구분이라고 한다. 인생이 사실은 어떠어떠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과 상관없이 인생이 마땅히 어떠어떠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것이 바로 윤리이다. (88쪽)

왜 고기를 먹으면 안 되는가?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동물에게 고통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왜 동물에게 고통을 주면 안 되는가? 내가 고통이 싫은 것처럼 동물도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제 고기를 먹으면 안 되는 윤리적 이유가 다 밝혀진 셈이다. 이런 윤리적 판단에 따라 나는 종차별주의를 반대한다. 그렇다고 해서 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동물이 고통을 싫어하므로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뿐이다. (10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