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화요일에 갔던 김동훈 쌤의 "현장에서의 위기 관리" 강의. 이거 들으려고 월요일 밤에 버스 타고 새벽에 서울 도착해서 종로로 갔는데, 철석같이 믿었던 유조교가 전 날 읽기 모임의 여파로 인해 늦잠을 자서 못 옴... 그렇지만 그런 것과 무관하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좋은 강의였다.

강의는 현장 활동가가 개인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위기 중에서도 소진(burn-out)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초반에 조직 차원의 위기 관리를 간단히 얘기하시면서 실제 경험하셨던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도 했는데, 만연한 폭력이나 진퇴양난의 상황 같은 게 나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좀 힘든 것 같다.) 정리된 것은 그 이후, 본격적으로 소진의 원인, 단계, 바탕에 있는 것 등에 대해 강의하신 내용이다.

이게 사소해보여도, 한 사람에게는 "도저히 못 살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참 중요하다. 본인이 행복하고 건강하지 않으면 활동가로서 아무리 대단한 성과를 내도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국제개발협력 분야 종사자들이 자신부터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고 지속 가능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개발 현장에서 부딪히는 위기 사례 - 현장 활동가의 소진과 위협 요인 이해


일시 : 2014년 1월 21일 화요일 10:00-12:00
장소 : 조계종사회복지재단
강사 : 김동훈 (조계종사회복지재단 나눔사업부문 부장)


* 주황/빨간색으로 강조된 부분은 정리한 사람에 의한 것이며, 빠진 부분이나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을 수 있음


조직 차원의 위기 : 쉽게 경험할 일 없는 편

- 대응에 있어 일관성과 보편성이 중요
- NGO에게 security는 마을 사람들 중 한 명이 되고, 그 결과 마을이 나를 지켜주게 하는 것. 대사관의 security 개념과는 다름


개인 차원의 위기 : 일상에서. 교통사고, 성추행/폭행, 소진 등



"소진" (Burn-out)


 * 원인

- 다른 스탭과의 관계 : 같이 일하는 사람(특히 관리자)과 안 맞을 때
- (건축) 업자가 된 기분 : 주로 건축 사업이 많다 보니. 물론 경험으로서 도움은 되지만 왜 여기에 있는 건지 의문이 들 수 있음
- 일이 없음
- 언어 부적응과 타 봉사단원과의 비교 : 특히 후자는 개인의 역량 차이에서 비롯되는데, 이것이 업무 불균형과 자신이 쓸모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것이 위험. 단기적인 효율성보다는 각자가 성장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고 기다릴 필요가 있으며, 팀웍이 중요.
- 종교 미션에 따른 업무 부여

이러한 원인과 함께 현장의 상황에 대한 고민을 객관화하지 못 하고 거기에 매몰되면서 그것이 자신을 갉아먹는 경우가 생김


 * 소진의 단계

- 열성 : 일에 대한 희망, 정력, 비현실적인 기대. 단기적인 성공과 심리적 보상을 원함
- 침체 : 활동은 계속되지만 조직 내의 인정이나 휴가 등으로 문제가 해결이 안 됨
- 좌절 : 자신의 능력과 업무 자체의 가치에 의문을 갖게 됨
- 무관심 : 좌절에 대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냉담해짐


 * 소진은

- 전염성이 있음
- 꾀병과는 다름. 임상적 증거가 있음
- 심각성의 정도가 다양. 가벼운 에너지 손실에서부터 심하면 죽음에 이르기까지
- 사람마다 스트레스 역치도 다름. 더 민감한 사람이 있음
- 잘 극복하면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음


 * 소진의 기저에는, "내가 문제를 해결한다"는 생각에 관련된 다음과 같은 전제들이 있음

- 내가 더 잘 안다
- 내가 더 잘 해결할 능력이 있다
- 내 능력과 방법이 좋은 결과를 낼 것이다
- 내가 그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 책임이 있다

그렇지만 아닌 것이 당연하다!

도움이 될 것 같았는데... 안 되네?
나 덕분에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아니네? (원래 행복했음)
나한테 감사해할 줄 알았는데... 당연히 여기네?

원래 그런 거다

위에서 말했듯 현장 상황에 대한 고민이 생길 때, 고민연구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 초보 자원활동가들의 특징

- 모든 걸 다 하고 싶고, 모두 구제하고 싶고
- 웬만한 위험은 감수하려 하고
- 옳고 그름을 따지려 하고 (그렇지만 우리는 다른 기준을 가진 곳에 있다!)
- 무의식적으로 장기적 관점보다는 임기 내의 성과를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 


 * 국제 자원 활동의 인재상 (소진을 덜 하는 사람이 되려면)

- 스트레스를 독자적으로 다룰 수 있는 사람
- 창의성, 자율성, 독자성
- 시비를 분별하기보다 긍정하고 연구하려는 사람
- 팀워크와 친화력
- 오래 버틸 수 있는 사람
- 개발협력의 근본 가치와 현실 사이에서의 균형

그 외에도 성추행/폭행 사건이 발생했을 때의 개인, 조직 차원의 대응책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음



Comment & Question
 

 * 주로 NGO에서 하는 사업들이 건축 사업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특히 학교를 짓는 것) 교육에 있어서 공간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학교에서만 교육이 일어난다는 것이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는 생각인데, 정규 학교교육은 아니어도 이미 그 커뮤니티에서는 각자 고유의 방식으로 배움과 가르침을 실행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것을 정형화된 학교교육으로 대체하거나 몰아내는 대신에, 가능하다면 내재된 역량을 끌어내어 교육이 활성화된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교육이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는 곳도 있을 것이지만, 어떤 곳에서는 학교는 아니어도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이 있지는 않을까? 교육을 위해서는 학교를 짓는 일이 우선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뒤집는 사례는 없을까? (그렇지만 이집트에서 학교가 파업해서 야외 카페 등등을 전전하며 수업을 했던 기억을 떠올려 볼 때, 학교는 소중합니다... 'ㅁ')

 * 소진의 원인과 관련해서, 언어와 관련된 타 봉사단원과의 비교는 개인적으로도 경험을 했던 부분이라 특히 공감하며 들었다. 사람마다 배우는 속도가 다르게 마련이므로, 그것을 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팀 내에서 서로 돕고 배우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텐데, 그 차이를 보면서 자신이 부족하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본인에게는 스트레스가 되고 그것이 팀원들 사이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자신이 건강하고 행복하지 않으면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없으므로, 이건 참 큰 문제라고 생각된다.

 * 속도뿐만 아니라, 언어를 배우는 스타일도 사람마다 참 다르다. 강의 중에, 영어만이 아니라 현지어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되고(여기에는 당연히 동의) 잘 못하더라도 더듬더듬 현지어로 이야기를 하며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나처럼) 그게 반대로 더 어려운 사람도 있다. 한국어로도 말이 별로 없고 사교성이 없으면 영어든 현지어든 비슷한 거 같은데 (ㅠㅠ) 나의 경우에는 초반에 그걸 내 부족함으로 생각해서 친화력 좋은 단원들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공부를 하든 바디랭기지를 하든 자기 방식대로 통로를 마련하는 거 같다. 물론 더 잘 통하는, 더 효과적인 방식은 있겠지만 자신에게 안 맞는 옷을 억지로 입어가면서 그 방식을 따르는 것은 개인에게 좀 힘든 일이라고 생각해서. 이럴 때는 서로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팀"이 있는 것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소진의 기저에 있는 전제들은, 헌신적인 단원들에게서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원래 통제 욕구가 강하고 원하는 결과를 내야만 하는 나도, 파견국이 바뀌는 일을 겪지 않았으면 저런 전제들을 좀 더 강하게 붙들고 있었을 것이다.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는 걸 경험하고서 '에라 모르겠다' 모드였던 것이 그냥 기대를 낮추고 들어가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고, 또 나는 이제껏 내가 잘나서 한국에서 좋은 결과들을 내면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무의식의 영역에서..) 가 보니까 나한테는 별달리 능력이 없더라는 게 분명해져서 그냥 살다가 왔다. 내가 내 문제도 해결 못 하고 사는데 다른 사람이나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 내 문제가 나만의 문제가 아니고, 저 사람과 이 사회와 다 얽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 한 사람에게 좋은 '시작' 지점인 거 같고, 그걸 계속 잘 간직하고 삶 속에서 풀어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고민'이 아니라 '연구'라는 김동훈 강사님의 말씀에 100% 동감.

 * 덧붙여, 강의 내용과 큰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초반에 인도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해주신 것을 듣고 가난과 폭력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서 폭력이 많이 발생하는 것 같긴 한데, 반대로 폭력을 쓸 정도의 힘이나 의지도 없는 곳도 있지 않나? 술처럼 사람을 제정신이지 않게 만드는 것의 작용? 그 사회에서 용인되는 폭력의 정도도 상당히 다른 것 같고... 개인적으로 폭력으로 인한 고통에 대한 두려움, 이런 것에 대해 민감해서 그런지 어떻게 이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인지 고민이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