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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에 한 번 정도, <빈곤에서 권력으로>를 읽는 책 모임을 갖고 있다.

혼자 책 읽는 것도 물론 재미있고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지만, 읽고 난 후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는 과정을 거치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훨씬 풍성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고, 더불어 내 머릿속이 정리되어 참 좋다. 이 모임의 경우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후에는 각자 자기 생각을 글로 정리해서 공유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는데, 이 글도 그런 이유에서 쓰게 되었다.



경제학에 대한 비판과 문학의 역할 - 사람이 중심이 되는 개발을 위하여


지지난 모임 때 읽은 부분은 12장 '21세기의 경제학'과 13장 '농지에 의지해 살다'였다. 처음 읽을 때는 별 생각 없이 술술 책장을 넘겼는데, 모임을 위해 다시 읽었더니 새삼 눈에 들어오는 부분들이 많이 있었다. <빈곤에서 권력으로>라는 책 자체가 워낙 방대한 내용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책이라, 챕터 하나 하나 들여다 보면 좀 더 깊이 있게 알기 위해 부가적으로 읽을 텍스트도 많다. 

12장의 핵심은 주류 경제학, 특히 신고전학파의 기본 가정들에 대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다.
  • 신고전학파는 사람들을 사익을 추구하는 행위자로 보고, 인간사회는 '원자화되고 효용의 최대화를 추구하는 고정된 선호를 가지고 있는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단순하고 오류가 있는 생각이다. 
  • 시장은 정치적 진공 상태에서 생겨나지 않았으며, 규정의 협상에 관여하거나 배제된 사람들의 상대적 영향력이 반영된다는 점에서 흔히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 주류 경제학의 입장에서는 개발을 소득을 창출하는 일로만 가정하는데, 이렇게 되면 상대적 소득보다는 절대적 소득에만 초점을 맞추고, 형평성을 경시하게 되어 권리와 존엄성에 기초한 개발을 하기 어려워진다. (실제로 이제까지 그래왔다). 
  • 주류 경제학이 개발을 주도하면서 발생한 오류에 대한 비판은 크게 두 가지- 무상의 돌봄 노동이 계산에서 제외되고 있음을 지적하는 페미니즘의 비판과 자연자원의 소모나 오염 피해 등을 고려해야 함을 주장하는 환경 측면의 비판이다.
주류 경제학이 시장이나 개발에 대해 주장하는 내용들보다도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경제학에서의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점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인간이 그렇게 명료한 한 마디로 설명될 수 있을 정도로 일차원적이고 단순한 존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만약 그러한 설명이 가능하다면, 옛날부터 존재해 온 수많은 문학 작품 속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다양한 인간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이익을 추구하며 합리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측면일 뿐인데, 이것을 전부로 생각하며 개발에 접근할 경우 당장 목표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어려울 뿐더러, 설사 그러한 결과를 이루어낸다고 해도 사람들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특히 타인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개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모인 사회를 연구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 사회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한 명 한 명의 가치를 인정하며, 측정되지 않는 부분을 간과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문학이 이런 부분에 있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2장에 나오는 주류 경제학에 대한 비판의 경우, 이미 오래 전 찰스 디킨즈의 소설 <어려운 시절>에서 다른 방식으로 제기된 바 있다. 아래는 곡마단에서 태어나 자유롭게 자란 소녀 '씨씨'가 '공리주의자인 그래드그라인드 씨가 운영하는 학교에서 받은 수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인데, 나에게는 두 번째 질문과 대답이 특히 와 닿았다. 

"국가의 부에 대해 설명했어요. 선생님이 자, 이 학급이 하나의 국가라고 가정하자. 이 국가에 오천만 파운드의 돈이 있다면 이 국가가 부유한 나라가 아니냐? 20번 여학생, 이 국가가 부유한 나라이고 너는 부자나라에 사는 게 아니냐? 하고 물었어요."
"뭐라고 대답했니?" 루이자가 물었다.
"루이자 아가씨, 모르겠다고 했어요. 누가 돈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그중 얼마라도 제 돈인지 아닌지를 모른다면 부유한 나라인지 아닌지, 제가 부자나라에 사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런 생각은 질문과 아무 관계도 없어요. 숫자로 계산된 생각이 아니니까요."
씨씨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네가 큰 실수를 저질렀구나." 루이자가 말했다.
"그래요, 루이자 아가씨. 이제는 저도 그것이 잘못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요. 그러자 맥초우컴차일드 선생님은 제게 다시 묻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이 교실이 커다란 도시라고 가정하자, 시민이 백만명인데 일년에 스물다섯명만이 길에서 굶어죽는다, 그렇다면 그 비율에 대한 너의 의견은 무엇이냐? 하고 물었어요. 저는ㅡ더 나은 답변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에ㅡ굶어죽는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백만명이든, 백만명의 백만배이든 마찬가지로 견디기 힘든 일이라고 말했어요. 그 답변 역시 틀린 거지요."

맥초우컴차일드 선생이 '백만 명의 시민 가운데 (오직) 스물다섯 명만 굶어죽는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씨씨는 '굶어죽는 사람의 수가 적든 많든 간에,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견디기 힘든 일일 것'이라고 대답하였고, 이제는 그 대화를 돌아보며 자신의 생각이 (최소한 그 교실에서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 나타난 맥초우컴차일드 선생의 사고방식은, 개발에 관련된 다양한 지표들을 볼 때 그것을 단순히 수치로만 생각할 뿐 그 숫자 뒤에 가려진 사람들의 삶은 전혀 보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소설 속에 나타난 빈곤과 불평등이 만연한 현실, 빈민에 대한 편견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그대로 찾아볼 수 있는 것이기에 150년 전에 창작된 이 소설은 우리에게 옛날 이야기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이와 같은 소설을 읽는 것은, 문학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키울 기회를 제공하며, 더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돌아보고 어떤 행동을 하게끔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12장의 내용으로 돌아와서, 이 책에서는 개발의 영향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도 기존 경제학에서 빠뜨린 비금전적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아래의 그림에서 노란색으로 표시된 것이 이전까지 주로 다뤄진 부분, 즉 개발의 경제적 영향이고, 나머지는 쉽게 수치화되지 않는다는 이유로(또는 정치적인 이유로) 무시되던 것들이다. 교육과 개발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나 또한 무의식 중에 개발을 경제적 관점에서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아래의 그림은 <빈곤에서 권력으로> 영어판에서 가져온 것으로, PDF 파일은 Oxfam 홈페이지에서 다운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