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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가을, 강대중 선생님의 '성인학습이론연구' 수업에서 제출했던 리뷰 페이퍼 #5

사실 이 수업을 통해서 성인학습에 대한 고민들은 많아졌는데, 그 고민들을 진득하게 붙잡고 관련된 내용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 했던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대학원 첫 학기이다 보니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지 잘 몰라 어정쩡하게 시간을 흘려 보낸 것이 많다. 다음 학기는 좀 더 알차게 보내야지 :-)


 

2013.11.19 성인학습이론연구 리뷰페이퍼

 

특정 소수에게만 가능한 관점전환?

 

 
이번 주에 읽은 두 편의 논문 가운데 Merriam‘The Role Of Cognitive Development In Mezirow’s Transformational Learning Theory’, 지난 주 Newman이 던진 질문들과는 또 다른 시각에서 관점전환학습을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Mezirow가 전환학습의 중요한 요소로 들고 있는 것이 비판적 성찰합리적/성찰적 대화두 가지인데, Merriam은 먼저 이 두 요소 모두 높은 수준의 인지 발달이 요구되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그렇다면 과연 관점전환이 모든 성인에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인지 묻는다. 이어서, 높은 정도의 인지적 발달 없이도 관점의 전환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는 사례들을 간단히 언급하며 과연 이성을 강조하는 서구의 비판적 성찰만이 관점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길인지 질문하고 있다. 스스로도 전환학습에 대해 공부하며 계속 품고 있었던 의문이었기 때문에 질문은 쉽게 이해할 수 있었지만 답을 찾기는 어려웠다.

 
Mezirow가 말한 것처럼 성인이 된 후 삶에서 만나게 되는 disorienting dilemma가 전환학습의 시작점이 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경험하는 모든 사람들이 관점전환을 겪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경험은 관점전환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며 더 중요한 것은 경험을 성찰하는 데서 오는 지적 성장이라는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이것이 이전부터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의문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내가 대학에 들어온 이후’, ‘채식을 시작하게 되면서’, 이집트에서의 생활을 통해크고 작은 관점의 전환을 겪고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의 경험을 해석하고 의미를 만들어가며 살아가고 있다고 하자. 대학에 입학한 이후 이전과는 다른 생활환경으로 인해 방황의 시기를 겪게 되는 사람은 수없이 많고, 비인도적인 방식의 가축 사육과 도축 영상 등을 보면서 충격을 받은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며, 나처럼 해외봉사단원으로 개발도상국에 다녀온 사람은 한 해에만 천 명이 넘는다. 그렇다면, 왜 나에게는 이러한 관점의 전환이 일어난 반면 다른 사람들은 예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잘 살고 있는 것일까? 혹시 다른 사람들에게도 관점의 전환이 일어났는데 그것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아서 확인하지 못 하는 것일까? 아니면 관점의 전환이란 개인적인 차원의 것이니 이제까지의 경험, 각자의 성향 등에서 비롯되는 차이로 받아들여야 할까?[k1]  이렇게 생각한다면, 과연 교육을 통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이것들이 Mezirow의 전환학습이론을 알게 되기 전부터, ‘변화라는 말로 관점의 전환을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품고 있던 의문이었다.

 
내가 경험한 관점의 전환과 그 방향, 전환으로 인한 삶의 변화가 반드시 옳은 것이고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결코 말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러한 변화가 깊숙한 곳에 숨어있던 다양한 나의 모습을 포용하고, 다른 사람의 시각이 아닌 나의 시각으로 스스로를 바라보고, 내가 원하는 가치들에 기초해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관점전환을 통해 스스로가 한층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만약 사람들이 각자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자유롭고 행복하지 않다면 그 원인을 스스로 찾고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것인데, 그것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전환학습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만약 그것이 Merriam이 지적한 것처럼 높은 수준의 인지 발달을 전제로 하고, 어느 정도의 나이와 고등교육 수준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이는 분명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일일 것이고,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른바 저개발국의 사람들과는 더욱 더 거리가 먼 일이 되어버린다.[k2] 

 
게다가, 충분히 삶의 경험들을 하기 전까지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정과 전제들에 의문을 품기 어렵고, 관점의 전환은 보통 30세 이후에 일어난다는 Brookfield Mezirow의 주장은 스스로의 관점 전환에 대해서까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나는 정말로 관점 전환을 한 것이 맞나? 사실은 관점 전환이 아닌데 그렇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닌가?’Newman의 논문에서 관점 전환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다소 못 미더울 지라도 당사자의 이야기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라 했는데, 이제는 당사자인 나조차도 내가 관점의 전환을 했다고 확실하게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또한, 매우 확실하게 1단계부터 10단계까지의 과정을 설명하는 Mezirow의 이론과 달리, 나의 관점 전환은 오래 전에 시작해서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 같고 어쩌면 이것은 죽을 때까지 계속될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난 주 읽었던 Newman의 지적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k3] 

 
두서없이 의문들을 늘어놓기만 했는데, 사실 이에 대한 답을 단시간에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직은 고민만 많이 하고 있지만, 그래도 전공과 관련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질문, 앞으로 공부하고자 하는 것과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재미있기도 하다. 이번 주 수업과 다음 주부터 읽을 Kegan의 이론을 통해 한 발짝 내가 찾는 것에 가까이 갈 수 있기를 바란다[k4] .

 


 [k1] 그것이 희극이든 비극이든 한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것-특히 비슷한 시대 비슷한 공간에서 비슷한 일을 겪었을 경우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는 교육/학습의 관점에서 그야말로 항구적인 질문입니다.

 [k2] 그런데 교과서에 있는 것처럼 인지수준이 높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누구라도 자신의 현재를 검토하고 평가하는 일은 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k3] 뉴만의 지적은 다소 덜 과학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매우 강력합니다학습과 삶,교육과 삶을 생각하는데 있어 메지로우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 내 의견입니다물론 뉴만이 메지로우 같은 이론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두 사람은 이론이라는 것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일과 하려는 일이 좀 달랐다고도 볼 수 있죠이론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의 생각을 돕는 것이고,세상을 보는 것을 안내하는 것이니까요.

 [k4] 6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