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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의 두 번째 서평 과제.
사람들이 인식하는 배움이 좀 더 확장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2014.05.13 성인교육방법론 과제
 

 왕멍, <나는 학생이다> 서평


중문학을 전공한 언니 때문에
, 이 책은 꽤 오랫동안 우리집 책장에 꽂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학생이다'라는 단순하고도 명료한 제목이 교육/학습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매우 분명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책을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흥미롭다. 결국 나는 이 책을 읽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외국에 나가기 전 책을 정리할 때 미련 없이 헌책방에 팔아버렸기 때문에 이번 학기에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참 질긴 인연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일단 이 책은 하나의 흐름을 가지고 이루어진 것이라기보다 저자 왕멍의 인생 철학을 몇 가지 주제로 나누어 그에 관련된 짤막한 글들을 모아둔 형식이기 때문에 읽는 데는 큰 부담이 없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크게 감명을 받았고, 또 다른 부분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읽기는 했지만 별 감흥 없이 책장을 넘기기도 했다. 나보다 훨씬 긴 세월을 살았고, 누구나 인정할 만큼 힘든 시기를 지나 이제는 황혼에 접어든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었다.

 

책 전체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책의 앞부분에서 왕멍이 자신의 정체성을 '학생'으로 설명하는 장이었다. 나도 나를 단 하나의 단어로 소개해야 한다면 학생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지금까지 스물아홉 해를 살면서 공식적인 학생의 신분으로 보낸 시간이 스무 해에 가까우니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예를 들어, 이집트에서 보낸 2년 동안 나는 학생의 신분이 아니었다. 나는 분명 봉사단원이자 한국어 교사라는 직함을 가지고 그곳에서 생활했는데 그러한 공식 직함과 별개로 학생, 즉 배우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은 여전히 나를 이루는 큰 부분이었다. 낯선 문화 속에 들어간 사람으로서 나는 새롭게 경험하는 많은 것들을 바탕으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강화하거나 수정했고, 긴 시간에 걸쳐 이전과는 조금 다른 가치관을 정립하기도 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보람되고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가르치는 일만큼이나 나에게는 어떻게 하면 학생들을 더 잘 가르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교실에서 다른 시도를 해 봄으로써 뭔가를 배우는 과정이 중요했다. 이집트에서 돌아온 이후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면서 나는 다시 한 번 공식적으로 학생의 지위를 갖게 되었는데, 이 선택의 이면에는 다른 것을 하지 않고 온전히 배우는 일에 몰두하고 싶었던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나 또한 왕멍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학습을 통해 내가 모르던 것을 알게 되고, 좀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에서 큰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생겨난 의문은, 왕멍과 나 같은 소위 '천생 학생'은 그저 일부 사람들이 타고나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실현될 환경을 만나지 못 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위의 물음에 대한 답이 어느 한 쪽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배움으로부터 좀 더 즐거움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도 누군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농부로 규정하였듯 각자의 삶 속에서 가장 큰 의미를 갖는 활동은 다를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려 하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은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느끼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느끼는 기쁨을 전달하고 싶어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배움으로써 자신이 이전에 모르던 것을 알게 될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끼는 왕멍 같은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사람마다 학습으로부터 얻는 즐거움은 다를 것이고, 삶 속에서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정도가 다른 것 또한 자연스럽다. 타고난 '학생'이 아니라면 도구로서 학습을 이용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고, 왕멍의 '학습 예찬'이 누구에게나 통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배움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 하는 것은 어쩌면 이들이 이제까지 그럴 만한 경험을 하지 못 했거나, 좁은 의미의 학습만을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단 현재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학습과 왕멍이 말하는 학습/배움은 그 의미에 있어 꽤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에서 왕멍이 제시하는 것은 매우 넓은 범위의 학습/배움으로, 어떻게 보면 인간의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새로운 상황과 이전에 접하지 못했던 문제를 마주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지식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활방식이나 지혜를 습득하게 된다. 이 자체가 배움이기에 왕멍의 배움은 책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정해진 시간에만 일어나지도 않는다. 이처럼 넓은 의미의,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 학습일 수 있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이와는 다르다. 많은 이들이 학습이라는 말에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학교와 같이 정해진 장소이고, 이와 함께 특정 연령대의 사람들만을 학생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교수o학습을 하도록 지정된 장소인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인 반면에 삶 속에서 배우는 것들의 가치는 인정받지 못 한다. 다큐멘터리 Schooling The World에서도 그러한 인식을 보여준 바 있다. 라다크의 여성들은 분명 자신의 삶 속에서 배움을 통해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갖추게 되었고 그들의 배움은 계속되고 있지만 근대적인 형태의 학교가 나타나면서 그런 것들은 인정되지 않고 그저 '못 배운 사람'으로 치부될 뿐이다. 이와 같이 특정한 장소, 시기, 내용만을 학습으로 인정하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다양한 배움을 인식하지 못 하고, 오직 학교나 가정에서의 한정된 학습 경험만을 떠올릴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누군가가 자신은 배움의 즐거움과 의미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을 한다 해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 이처럼 특정한 형태의 학습만이 장려되고 넓은 범위의 배움이 갖는 의미가 퇴색되는 것을 생각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왕멍이 말하듯 누구도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배움을 박탈할 수는 없다. 책을 읽어 지식을 습득하는 것만이 학습이 아니라고 본다면, 배우고자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세상 모든 것에서 배움을 얻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교육을 인간의 보편적 권리라고 말하며 개발도상국의 아동들이 기초 교육의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일의 취지와 필요성에 동감하면서도, 어쩌면 이러한 운동 때문에 그 사회에서 이전부터 존재해 온 다양한 배움이 무시당하거나 배제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되기도 한다. 제도 교육에의 접근성을 보장함으로써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키려 노력하고,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개발도상국의 상황을 생각할 때, 어느 누가 인정해 주지도 않을 왕멍 식의 배움은 몽상가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제도 교육이나 외부로부터 인정받는 학습과 보다 본질적인 배움이 공존하는 방향으로 갈 수는 있지 않을까?

 

지금 우리 사회는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큰 아픔을 겪은 직후이고 여전히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와 슬픔, 우울감을 토로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고,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도통 모르겠기에 나 또한 무력감과 피로감을 많이 느끼고 있다. 그러던 중 이 책에서 왕멍이 "배움은 내가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것을 또 하나의 배움의 계기로 삼게 했고, 기나긴 학습의 한 과정으로 삼게 했다"고 한 부분을 읽으면서,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사건을 과연 배움의 계기로 삼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배움의 대가라 하기에는 너무나 큰 값을 치르고 있는 것이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로부터 귀중한 배움을 얻지 못 한다면 또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우리는 그 배움을 인식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배움의 경험과 결과를 서로 나누고 있는가? 왕멍이 말하듯 우매함과 어둠으로부터 빠져나와 지혜와 밝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인생을 명랑한 항해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학습뿐만 아니라 사회의 학습 또한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