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먹는 호랑이의 이야기, 그 첫 번째. 콩 세상에 콩 좋아하는 애들도 있을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가리는 거 없이 뭐든 잘 먹는 아이였지만 (아, 파와 양파는 예외야. 이건 엄마도 안 드시는 거라 편식한다고 혼 날 일도 없었지!) 콩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거 같아. 그 때야 식탁에 올라오는 콩이라고 해도 밥에 들어가는 게 다였던 것 같은데, 일단 콩밥이 나오면 나는 콩 먼저 콕콕 골라먹었어. 콩을 남길 수는 없으니 대신 콩 먼저 먹어서 깨끗해진 흰 밥을 먹는 길을 선택한 거지. 싫은 거 먼저 해치우고 좋아하는 건 아껴두는, 그런 아이였나 봐. 지금은 콩 반 현미 반인 밥을 짓고 콩을 먼저 골라 먹는데, 콩이 싫어서가 아니라 맛있어서 먼저 먹어. 십 년 사이에 이렇게 달라졌네, 내가. 그나마 어릴 때..
정현이 ‘호텔 파이루즈’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다른 곳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자에게 자신의 다음 여행지를 이야기했을 때, 그 여행자는 자신이 묵었던 곳이라며 호텔 파이루즈를 소개해 주었던 것이다. 정현은 특별히 예약해 둔 숙소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미리 수집해 둔 정보도 없었기 때문에 그 곳으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홈페이지는커녕 인터넷 카페 하나 없이 입소문으로만 영업을 한다는 것은 좀 이해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거나 덕분에 기차에서 내렸을 때 그녀가 가진 것은 그 여행자가 그려준 어설픈 약도 하나였다. 주변에 이렇다 할 큰 건물은 없었다는 그의 말을 반영하듯, 약도라고 해 봐야 하얀 종이 위에 직직 그어진 몇 개의 선일뿐이었다. 기차역을 빠져 나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