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 이 글은 '광야 속에서'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글로, 그 내용이 가톨릭 및 성경과 관련되어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종종 비유를 들어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시곤 합니다. 어떤 때는 그 비유가 뜻하는 바가 너무도 뚜렷해서 아무런 생각 없이도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반면, 어떤 때는 비유를 통해 대체 무엇을 말 하고 싶으셨는지 아리송하게 여겨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에 나온 '약은 집사의 비유'처럼 말입니다.


이야기에서 집사는, 주인의 재물을 낭비한다는 이유로 쫓겨날 위기에 처합니다. 그러자 그가 취한 행동은, 언젠가 자신이 집사 자리에서 쫓겨 나더라도 누군가의 환대를 기대할 수 있도록, 주인에게 빚진 이들을 불러 빚을 조금씩 낮춰 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자기 재물도 아닌 것을 자기 것마냥 탕감해 주는 것이 마냥 잘 한 일 같지는 않은데, 이야기의 후반에 보면 주인이 그 집사를 칭찬했다고 하니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러 신부님들께서 이 말씀을 쉽게 풀이해 놓은 것을 찾아보았더니, 이야기의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의미가 많이 다르게 해석되었는데 그 중에서 제 마음에 와 닿는 것은 다음 내용이었습니다.


복음 말씀을 다시 한 번 묵상하던 중, 문득 며칠 전 다녀온 민들레 국수집(2010/07/10 - [생각주머니/읽고쓰다] - 민들레 국수집의 홀씨 하나)이 생각났습니다. 아, 이 이야기를 하려면 왜 민들레 국수집에 갔는지부터 시작해야겠군요.

좀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저는 큰 일이 있을 때마다 하느님께 약속을 드리곤 합니다. '주님, 이번에 이거 들어주시면 제가 꼭 요거 할게요.'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대학에 들어올 때는 '붙여만 주시면 성서모임을 열심히 하겠다'고 했는데, 입학한 이후로 저는 이런 약속 한 것을 살짝 잊고 있었지만 하느님은 전혀 잊지 않으셨는지, 정말로 성서모임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해 주시더라구요 :) 쓰고 보니 '조건부 기복 신앙'인 것 같아 창피하지만, 이번에 코이카 지원을 하면서도 마음이 간절해지니 자연스럽게 '주님, 이번에 코이카 합격시켜주시면-' 이라는 기도가 입에서 흘러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이거 해 주셨으니 저도 이거 하나 할게요' 라는 계산법 대로가 아니라 그냥 감사하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바로 그것이 민들레 국수집에 가서 저의 시간과 힘을 봉사하는 데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토요일, 8시쯤 집을 나서 인천으로 향했습니다. 동인천역까지 가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준비해 간 지도를 보고 민들레 국수집을 찾아가는 길에 무진장 헤맸습니다. 길을 잘 모르겠으면 얼른 전화해서 물어봤어야 하는 건데, 왠지 혼자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계속 이 길 저 길 기웃거리다가 결국은 30분 정도를 뺑뺑 돌았어요. 결국은 전화를 걸어 설명을 들은 끝에, 30분 전에 슥 지나친 길에서 민들레 국수집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 많은 봉사자들이 와서 일을 하고 있었고, 저는 얼른 앞치마를 하나 둘러 매고 일을 시작, 10시 30분부터 오후 2시 45분 경 그 곳을 나설 때까지 쭉 설거지팀에서 일을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 곳에 가기 전에는 어떤 선입견이 있어서 살짝 두려움이 느껴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노숙하시는 분들이 주로 찾아온다는 이야기에 (부끄럽지만) 냄새가 나지는 않을까, 거칠게 행동하시는 분들이 계시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을 했었는데, 와서 식사를 하시는 분들은 다들 점잖으셨고 옷차림도 비교적 말쑥하셨습니다. 조용히 식사를 하신 후 잘 먹었다고 말씀하시고 자리를 뜨는 모습만 보면 일반 식당의 손님과 다를 바 없었는데, 한 가지 눈에 띄는 차이점이라면 바로 식사량이었어요. 일반 밥 공기 3개 분량 정도 되는 밥을 식판에 담으시는 모습에서, 그 식사가 그 분들에게는 하루의 유일한 끼니가 될 수도 있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 끼 꼬박 꼬박 챙겨 먹고 간식까지 잊지 않는 제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봉사하는 분들을 보면서 참 신기했던 것은, 이 분들이 민들레 국수집의 손님들을 대할 때 정말 VIP를 대하는 것 같이 하시는 점이었습니다. 마치 찾아오시는 분들이 그 곳의 주인인 것처럼, 또는 꽤 큰 돈을 맡겨놓은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것 좀 더 드세요' '우유 가져 가세요' '밥 많이 드시지 말고 여기 닭도리탕 많이 드세요' 하고 끊임 없이 이야기하시더군요. 또, 이번 주는 추석이 끼여 있어 수요일에는 문을 열지 않고 목요일에 문을 여는데, 행여나 왔다가 헛걸음 하는 분이 생길까, 손님 한 분 한 분에게 '수요일은 문 안 열고 목요일에 엽니다' 하는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돈을 내는 진짜 손님도 아니니 아쉬운 사람 입장에서 그걸 확인하게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이렇게 봉사자 분들은, '내 것이 아닌, 누군가가 맡겨 놓은 잔뜩 샇인 재물을 아낌 없이 나누어주기만 하면 되니 얼마나 기쁘냐'는 듯, 즐겁게 일을 하며 정성스럽게 손님들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복음말씀 묵상을 하던 중 떠오른 것이 바로 이 분들이었습니다. 집사가 사람들을 불러 빚을 탕감해 줄 수 있었던 것은, 그 빚이 자신의 재산도 아니었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나중에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봉사'를 하고 무언가를 이웃과 나누는 것도 사실상 본질은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들레 국수집에서 봉사를 하시는 분들이 자신이 베푸는 모든 것이 자신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아낌없이 퍼 주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내가 그 모든 것의 '주인'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누어 주면서도 좀 아깝게 생각될 것이고 자꾸만 생색을 내게 되거나 이래라 저래라 하는 잔소리가 나오기도 하겠지요. 그렇지만 내가 잠시 그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지금 다른 이들에게 잘 대해 줌으로써 나중에 더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음을 알기에 즐겁게 그것들을 나누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봉사와 나눔을 통해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놓는다면 나 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보다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테니, 이것이야말로 '더 좋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  

결국 제가 가진 모든 것은 그것이 재물이든 능력이든, 하늘에 계신 그 분으로부터 받아 잠시 사용하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제가 그것의 주인인 양 행동할 것이 아니라, 어차피 내 것도 아닌 것, 아낌없이 다른 이들과 나누면서 살아가는 것이 위의 복음 말씀에 나오는 집사처럼 영리하게 행동하는 것이겠지요. 코이카 봉사단원으로서 페루에 가게 되면, 그곳에서도 '나의 소중한 시간과 능력'을 누군가에게 주고 있음을 아까워하는 대신, 하느님이 저에게 맡기신 것을 찾아가기 전에 얼른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후일을 기약할 수 있도록 기쁜 마음으로 일하는 '약은 집사'가 되어야겠습니다 :D

+
한국을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민들레 국수집에 가려고 합니다. 혹시 같이 갈 생각이 있으신 분들은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 :)
그냥 혼자 가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에요. 토요일에서 수요일(목, 금 휴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답니다.
참고로, 웬만한 밥집 밥은 저리가라입니다. 반찬도 밥도 참 풍성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