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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3일 월요일 ~ 5월 29일 일요일


업무

1. 다른 학년은 모두 종강을 해서 이번 주에는 4B 관광한국어 수업만 있었다. 마지막 수업이라 조금 색다른 시도를 해 보고 싶어 '뉴스로 배우는 한국어' 수업을 계획하고 학습자료를 만들었는데, 실제로 수업을 해 보니 학생들이 좀 어려워했다. 나중에 TV5 MONDE에서 제공하는 프랑스어 교재를 직접 풀어 보면서 실패 요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는데, 학생들의 실력에 맞추어 처음에는 가장 중심이 되는 내용만 이해했는지 확인하고 그 뒤에 세부 내용을 확인하는 식으로 문제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욕심은 크고 능력은 부족한 지라 그렇게 섬세하게 구성하지 못 한 것이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두 시간만에 다 끝내야겠다는 생각에 학생들이 스스로 단어를 찾고 머리로 이해할 여유를 주지 않은 것도 있다. 아무튼 좋은 교사가 되는 일이란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능력이 없으면(또는 게으르면) 학생들이 고생한다!

2. 보충수업 때 어떤 식으로 수업을 할 지 슬슬 계획을 짜고 있다. 나는 외국어를 배울 때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가 한 권에 들어있는 종합교재를 쓰는 것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단어면 단어, 듣기면 듣기, 읽기면 읽기 어느 한 쪽에 특화된 교재를 정해 여러 권을 한꺼번에 공부하다 보면, 종합교재에 비해 실력이 느는 것이 좀 더 빠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보충수업 때도 단어는 단어대로 공부하고, 듣기와 읽기는 다른 교재를 이용해 연습을 하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교사가 된 상황에서 이렇게 수업을 하려고 하니, 학생들에게 교재를 여러 권 사라고 할 수가 없어서(한 권 전체가 필요한 경우도 별로 없고) 결국은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점이 있네? 다행히 보충 시작까지는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천천히 교재를 준비해도 될 것 같다.

3. 이고스에는 한국어 사무실과 교실이 같은 층에 있는데, 안타깝게도 교실에는 아직 에어컨이 달려있지 않다. 방학 때 수업을 하려면 에어컨은 정말 정말 필수이기 때문에 처음 기관에 오던 때부터 학과장에게 에어컨 설치해 달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아직도 에어컨은 감감무소식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어서 계속 찾아가고 있는데, 목요일에 해 주겠다고 해서 갔더니 엔지니어가 이미 왔다갔네 어쩌네 하면서 일요일에 다시 오라고 했다. 일요일에 다시 갔더니 원래 달아주려던 에어컨이 작동을 하지 않는다며 새 에어컨을 설치하려면 1주에서 2주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당장 보충을 시작할 것은 아니어서 나도 마음에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알겠다고, 대신 시험 때까지는 꼭 설치를 해야한다고 말하는 선에서 물러났지만 13일까지도 설치가 안 되어있으면 본색(성질 나쁜 사람으로서의)을 드러내야 할 지도... (그런데 사실 그 때까지 달아줄 거라는 기대는 안 하고 있다) 

4. 9월에 있을 TOPIK 접수를 받고 있는데, 4학년 애들은 시험 보겠다고 말은 잘 하더니만 막상 응시료와 사진 2장은 '아무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 내가 전 날 따로 문자도 보냈기 때문에 도저히 마음 좋게 '아, 얘네가 까먹었구나' 하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자기 일인데 그 정도 챙길 만한 정신도 없으면 시험은 봐서 뭐하나. 이건 태도가 안 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나의 버럭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따로 시간을 정해 응시료와 사진을 가져온 학생 한 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접수를 하지 않았다. 자기 말에 책임을 지지 않고,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좋은 결과만 기대하는 것 - 바로 이런 부분에서 학생들에게 실망하게 되는 것 같다.


생활

이번 주에는 목사님 가족이 주말에 일이 있으셔서 수요일 저녁에 성경공부를 했는데, 열 명이 넘는 사람이 참석해서 아주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함께 읽은 것은 요셉에 관련된 내용인데, 어린 시절 동화책으로 접했을 때 참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이다. 그렇지만 좀 자라고 나서 성경을 읽으면서부터는, 나는 요셉을 비롯해서 아벨, 야곱 등 하느님이 편애하시는 인물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가만히 살펴 보면 그들이 다른 형제들보다 꼭 착한 것도 아니고, 좋은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좋은 것들은 그들만 차지하는 것일까, 하느님이 공정하다는 것은 다 뻥이야' 아마도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하느님의 편애를 받는 요셉은 나중에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르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 다른 형제들은 경험하지 못 한 힘든 과정을 거쳐야했고, 처음 선택을 받았던 아브라함도 결국 자기가 살아있을 동안 얻은 좋은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또 그 분이 요셉을 선택하셨다고 해서 다른 형제들을 모두 외면한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가장 좋은 것'을 나누어주셨다는 점을 생각하면 결국 '공평하신 하느님'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내가 하느님과의 관계를 가장 우선에 놓느냐, 아니면 다른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나는 요셉이 될 수도, 다른 형제가 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목요일에는 집주인인 카이리가 저녁식사에 초대해서 윗집에 사는 자이카(일본 해외봉사단) 단원 케이, 관리인 사베르와 함께 배를 타고 서안으로 건너갔다. 카이리는 룩소르에 집을 지어서 주로 외국인들에게 팔거나 빌려주는 사업을 하고 있는데, 서안에 지은 집을 보니 나름의 건축철학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을 먹기 전에 구경한 집은 그냥 콘크리트로 지어올린 네모난 건물이 아니라, 이슬람 디자인을 적용하여 천장에는 돔 양식을 사용하고 바닥은 사암을 이용해 시원하게 만든 특색있는 집이었다. 열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식사초대를 받을 때 내가 채식을 하는데 괜찮겠냐고 했더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고, 실제로 음식도 채식을 기본으로 고기를 따로 준비해 주었다. 게다가 보통의 이집트인들은 손님을 초대하면 엄청 먹이려고 들어서 권하는 음식을 사양하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카이리는 그다지 강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좀 달랐다. 덕분에 농장도 딸린, 카이리네 대가족이 사는 집에서(자기 아이들과 조카를 합쳐 17명의 꼬맹이가 산다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집주인 배를 타고 나일 강을 건너

새로 지은 이슬람 식 집을 구경하고

집에서 저녁식사하며 가족들도 만났다


토요일에는 룩소르에 놀러온 J언니 손님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처음 보는 단원들이라 궁금하기도 하고, 원래 J언니와는 매주 한 번은 같이 저녁을 먹는지라 한 끼 같이 먹고 싶어 초대를 했는데, 오후 즈음에 건물 청소를 한다고 사베르가 물을 뿌리던 것이 우리 집으로도 들어온 탓에 그거 청소를 하느라 마지막에 좀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손님들이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드신 것 같았고, 다들 유쾌한 분들이셔서 재미있었다 :) 일요일에는 성당에 가서 9시 미사를 드렸는데, 지난 주에는 영어로 하더니만 이번 주에는 또 프랑스어여서 좀 헷갈렸다. 이 날 미사 후에 에어컨 설치 때문에 학교에 갔으나 별 소득이 없었다 흑흑.

이번 주에는 수업이 별로 없어서 다른 때보다 한국 드라마니 예능을 많이 보았는데, 특히 '승승장구'에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2010/09/25 - [생각주머니/읽고쓰다] - 사는 것이 '재미'없는 당신에게]의 저자 김정운 씨가 나왔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대체로 내용은 책과 거의 비슷했는데, 자신의 행복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버섯덮밥이 생각나 만들어 먹었다. 나에게 행복이란, 현미밥 위에 쫄깃쫄깃한 버섯들이 듬뿍 얹어진 이 버섯덮밥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먹으면 입만 즐거운 것이 아니라 몸도, 마음도 모두 함께 건강해지는 듯한 느낌. 나에게는 영혼을 위한 음식이라고나 할까 :) 

한국에서 가져온 건야채로 끓인 시금치국과

새송이버섯, 표고버섯, 목이버섯이 들어간 버섯덮밥


이번 주에는 손수굽기를 좀 많이 한 편이다. 첫 번째는 월인정원님 레시피를 보고 만든 캐슈넛초코칩쿠키, 두 번째는 토요일에 오는 손님들을 위해 구운 코코넛+크랜베리 비스코티, 세 번째는 식사빵으로 두고 두고 먹으려고 구운 세몰리나빵. 비스코티는 만드는 과정에서 베이킹파우더를 깜빡 빼먹은 바람에 오븐에 넣기 직전 그 사실을 깨닫고 이것을 구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을 했는데, 비스코티라는 이름대로 두 번 구웠더니 다소 딱딱하기는 하나 먹을 만한 녀석이 되어서 매우 다행이었다. 세몰리나빵은 두 번 연달아 성공했으니 이제는 나의 레시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세몰리나 가루가 너무 비싸서 여기에서나 먹을 수 있는 빵일 듯.

성경공부 때 가져간 캐슈넛초코칩쿠키

캐슈넛과 초코청크가 듬뿍 들어갔다

손님 접대용으로 구운 비스코티

그럭저럭 비스코티라고 할 수 있을 만한 비주얼

세몰리나 가루를 이용해서

한 주의 양식이 될 빵도 구웠다



벌써 5월도 다 끝나간다. 처음에는 적응을 하는 단계라 새로운 것들이 많아서인지 하루 하루가 길게 느껴졌는데, 요즘은 뭘 하는 지도 모르게 시간이 슝슝 가는 느낌이다. 어쨌거나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감사히 생각해야겠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