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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30일 월요일 ~ 6월 5일 일요일


업무

1. 6월 중순에 있을 시험 때까지 수업이 없어서, 요즘 매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학교에 안 가고 집에 있자니 너무 널널한 느낌이라 보충수업 때 쓸 수업자료라도 만드려는 생각으로 사무실에 나갔다. 일단 초급과 중급으로 나누어 수업을 짜고 있는데, 일주일에 세 번이라고 해봤자 한 달에 12번, 결국 보충수업이라고 해도 내가 원했던 것을 다 가르치기에는 좀 부족할 듯하다. 물론 숙제를 많이 내 줘서 학생들이 자율학습을 할 수 있게끔 유도할 생각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얘네가 얼마나 따라올까 싶기도 하다.

2. 6월 중순까지 활동지원물품을 신청해야해서 준비를 시작했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한국어 교재여서 인터넷 서점을 통해 책을 조사하고 있는데, 생각보다는 다양한 교재들이 나와있었다. (실제로 얼마나 잘 만들어진 교재인지는 직접 사용해 보아야 알겠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직접 책을 들여다보고 비교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단순히 책 제목이나 출판사의 인지도만을 가지고 책을 골라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Frenchbook이라고 프랑스어 교재를 파는 인터넷 서점에서는 책의 목차와 함께 내부 구성을 볼 수 있고, 인기가 많거나 좋은 교재로 인정받은 책의 경우 상세한 리뷰도 올려두는데, 한국어 교재를 파는 사이트에서도 이런 서비스가 제공된다면 참 좋을 것 같다. 그나저나 함께 일하는 J언니가 4월에 신청한 책들이 도착하면 보충수업 때 활용하려고 기다리는 중인데 감감무소식이다. 그냥 기다리지 말고 있는 책으로 수업을 짜야 하나 싶다.


생활

이번 주는 주로 집에서 책 읽고, 다운받은 드라마 보고, 빵을 굽는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예전 같으면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오히려 마음 불편하게 느껴졌을텐데, 이제는 여유로운 일상에서 소소한 재미와 행복을 느끼는 것에 좀 익숙해진 것 같다 :D

금요일 새벽에는 카이로에서 온 J언니의 손님들과 벌룬투어를 다녀왔다. 새벽 4시에 집을 출발해서 다 마치고 돌아오니 6시~ 일단은 새벽 공기가 선선해서 참 좋았고, 하늘에서 내가 사는 동네를 내려다보는 것에서도 또 다른 재미를 느꼈다. [2011/06/19 - [길위의시간/이집트통신] - 하늘에서 보는 룩소르, 벌룬투어] 이 날 새벽의 시원함에 홀딱 반해서 토요일인 다음 날에도 4시 50분에 일어나 5시부터 약 40분 정도 새벽 운동을 했는데, 보통 때 나일 강변을 걸으면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호객꾼들이 없어서 그야말로 상쾌한 새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5시만 되어도 환하고 길에 경찰도 있어서 별로 위험하지는 않을 듯하니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이렇게 운동을 하면 참 좋을 것 같다. 

금요일 오후에는 성경공부가 있었는데, 이번 주의 내용은 탈출기의 전반부로, 모세가 여러 기적을 일으켜 파라오의 손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빼내는 부분이었다. 꽤 방대한 내용을 다루다보니 모임 동안에는 따라가기에 바빠서 별로 생각을 하지 못 했었는데, 집에 돌아와서 혼자 있다보니 '나의 파라오는 누구(혹은 무엇)일까'하는 물음이 떠올랐다. 나를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고, 얽어매고 구속하는 것이 무엇일까. 또는 무엇이었을까. 지금 당장은 없더라도 이제까지 스물다섯 해를 살면서 분명 힘들고 괴로웠던 시간들이 있었을텐데, 나는 잘 까먹는 편이라 그런지 단박에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이러니 파라오로부터 구해주신 것에 대해서도 감사할 수 있을 리가...)
어쩌면 지금의 나는 파라오에게서 벗어나 광야를 걷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 더 가까울 것 같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금만 힘들면 '어쩌자고 나를 이 곳에 데려왔냐, 차라리 파라오 밑에서 죽게 내버려두지 그랬냐'고 모세에게 불평을 하듯, 나도 나의 길을 걸어가며 종종(횟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비슷한 불만을 터뜨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탈출기의 후반부를 다룰 다음 모임이 더 기대된다.

이번 주의 손수굽기는 다크초콜렛브라우니와 건포도 호밀빵 :D 다음 주가 내 생일이라 괜찮은 케이크 레시피를 찾기 위해 작은 그릇에 한 번 구워봤는데 폭신한 케이크라기보다는 단단하지만 엄청 진한 브라우니가 되어버렸다. 건포도 호밀빵은 갑자기 겉껍질이 단단한 유럽빵이 생각나 만들어본 건데, 반죽이 질어 만드는 데 힘은 좀 들었지만 대신 결과물에 매우 만족!

손바닥만한 그릇에 시험삼아 구워봤다

케이크라 부를 수 있을 지는 모르겠으나 맛은 있었음

오븐에서 막 나온 호밀빵

빵칼로 썰 때가 가장 좋다

노란 건포도가 쏙쏙 박혀있다


갑자기 떡이 생각나서 쌀을 불려 갈고 체에 내린 다음 쪄서(음, 상당히 복잡했구나) 백설기를 만들었다. 원래 백미를 안 먹다보니 처음 룩소르 내려와서 산 쌀 1kg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그것도 좀 소비할 겸 만든 건데, 마찬가지로 백설탕을 안 쓰다보니 집에 마스코바도밖에 없어서 색깔이 저렇게 나왔다. 나는 떡보다는 빵을 사랑하는 빵순이라 자주 만들 일은 없겠지만 성공적이었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 맨 아래 사진은 일요일에 J언니와 함께 먹은 태국식 레드커리와 오븐에 구운 양파링~ 레드커리는 페이스트와 코코넛밀크만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어서 오히려 한국식 카레보다 더 간단한 음식이고, 양파링은 튀기는 대신 오븐에 구워냈는데 나름 바삭하고 맛있어서 다음에 또 해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J언니의 입맛도 상당히 인터내셔널해서 나의 국적불명 음식을 잘 받아들여주기 때문에 다행이다. 

이렇게 찌다가 베보자기를 살짝 태워먹었다 흑

주변 분들께 맛이라도 보라고 나눠드렸음

레드커리와 오븐에서 바싹 구운 아이쉬

BBQ맛의 양파링과 감자고로케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문화생활이 '만들어 먹는 것'이다보니 요즘 포스팅의 절반 이상은 요리 이야기가 차지하게 된다.
앞으로는 좀 다른 종류의 생산적인 이야기도 집어넣고 싶은데, 과연 그렇게 될 지는 잘 모르겠다 하핫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