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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24일 월요일 ~ 10월 30일 일요일


업무

1. 1학년 : 수업을 시작하면 먼저 지난 수업 복습 겸 칠판에 단어를 10개 정도 쓴 다음 한 명씩 나와서 읽고 직접 써 보게 한다. 읽기를 시키는 건 기본적인 발음 확인을 위해서이고, 쓰기를 시키는 건 아랍어 사용자의 특성 상 아주 요상한 방법으로(정말 놀라울 정도로 창의적인 방법의 한글 쓰기를 볼 수 있다) 한글을 쓰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바른 방법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 학생들이 나와서 쓰는 걸 보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획을 긋는 경우 등이 나오는데 그럴 때면 다시 쓰게 시켜서 제대로 된 방법을 익히게 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하면 학생 한 명 한 명 시간이 꽤 걸리긴 하지만 기초 공사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나의 양보할 수 없는 제1 원칙이다. 지금 제대로 해 놓으면 나중에 훨씬 쉽게 한국어를 익힐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1학년은 결석하는 사람 전혀 없고, 지각도 5분이 최대인 정도로 아주 성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쩌면, 5분만 지각해도 눈을 부릅뜨는 외국인 선생님이 무서워서 그럴 엄두를 못 내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과제도 대부분 열심히 해 오는데, 2명 정도가 지난 시간에 배운 자모음 발음을 영 이상하게 해서 잔소리를 좀 해야 했고 덕분에 분위기도 착 가라앉았다. 집에서 발음 연습 하라고 씨디도 하나씩 만들어 줬는데, 그리고 자모음을 한 번에 다 가르친 것도 하니고 수업 한 번에 대여섯개씩 아껴가며 가르치고 있는데 그런 상태로 수업에 왔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할 생각이 없으면 지금이라도 다른 언어를 선택하라,는 것으로 일단 마무리짓고 최대한 화기애애하게 수업을 이어가기 위해 나름 노력했다.

노력할 생각이 없으면 다른 언어를 선택하라는 말이 학생들에게 좀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나는 배울 준비가 되지 않은 학생에 대해서 만큼은 매우 엄격한 편이다. 누가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서로 기분 상해 가면서 수업에서 만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이런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한국의 정서와 문화에 좀 익숙해질 것이라는 기대도 가지고 있다. 시간 약속은 온통 '인샬라'고, 문제 없다는 말로 온갖 문제를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가는 이집트식 정서로는, 나중에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가이드 일을 할 때에도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한 번에 바꿀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그럴 생각도 없지만, 이 곳 학생들에게 변화가 필요한 것만은 분명하다.  

2. 3학년 : 요즘 3학년 아이들은 나의 엔돌핀 역할을 해 주고 있다. 수업 시간에 한 눈 안 팔고, 과제 열심히 해 오고, 시험 결과도 나쁘지 않아서 2시간 내내 목소리 높일 일 한 번 없이 기분 좋게 수업을 끝낼 수 있었다. 아직 좀 어색한 1학년 아이들에 비하면 나도 아이들에게 익숙하고 아이들도 내 스타일을 잘 알아서 서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 같다. 특히 한 명이 방학 동안 열심히 수업을 들으면서 한국어 공부에 재미를 들이고 나니, 그 학생의 영향인지 다른 학생들도 지난 학기에 비해 좀 더 애살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대견스럽다. 부디 지금의 모습이 이번 학기 마칠 때까지 이어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문장 세 번씩 쓰는 숙제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줬다

좀 비뚤비뚤해도 깔끔한 글씨

 
3. 4학년 : 진짜 문제는 4학년이다. 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나도 잘 모르겠어서 그냥 최대한 발음 교정해 주고, 조금씩이나마 문법 진도 나가는 식으로 수업을 하고 있다. 어쩌면 내가 너무 큰 욕심을 부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애들이 같은 걸 계속 틀려도 목소리 높이지 않고 다시 고쳐주겠노라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는 중이다. 
 
4. 관광한국어 교재 : 졸업한 학생이 요즘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룩소르의 유적을 설명하는 가이드 일을 시작했다. 수업에서는 동안의 룩소르 신전과 카르낙 신전까지만 다루고 서안의 유적은 가르치지 못 했는데, 학생 스스로 한국어 스크립트를 만들어 와서는 이상한 부분을 고쳐달라고 부탁했다. 해서 그것을 기본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룩소르 가이드북을 참고해서 내용을 좀 더 보충해서 돌려주었는데 그 과정에서 가이드북을 공부해 보니 재미있는 내용이 참 많았다. 아무 생각 없이 가서 사진만 찍고 돌아온 '멤논의 거상'도 읽어보니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었고, 왕가의 계곡에서 본 무덤들은 누구 거였는지 이제는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인데 책에는 구조와 벽화의 내용들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 다시 한 번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교재 만들어야지, 만들어야지 말만 하면서 제대로 공부도 안 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좀 자극을 받았으니 진짜로 일을 시작해야겠다.


생활

수업 외에는 방학 때와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다. 개강한 이후로는 일주일에 다섯 번 운동을 하러 졸리빌 호텔에 가는데, 하루는 집에 돌아가는 셔틀 버스를 놓쳐 시간이 좀 남은 김에 호텔 내에 있는 동물원을 구경했다. 사실 한 귀퉁이에 떨어져 있어서 동물원이 있다는 것도 몰랐는데, 투숙객인 프랑스인 가족이 간다는 이야기에 함께 카트를 타고 가 보았다. 미술관, 박물관, 동물원, 수족관처럼 '비슷한 것을 왕창 모아놓은 곳'에 가면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들이 있는 느낌이어서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여기는 호텔의 작은 동물원이다 보니 크기도 작고 동물도 그다지 밀집되어 있지 않아서 편한하게 둘러볼 수 있었다. 낙타, 원숭이, 토끼에게 먹이를 주면서 같이 놀 수도 있어서 아이들이 특히 좋아할 만한 곳 :-)

호텔 한 귀퉁이에 마련된 동물원

제일 처음 만난 것은 낙타

낙타에게 먹이 주기

말도 여유롭게 식사 중

먹이 주는 곳에 몰려든 양 떼

맛있게 받아먹는 양들

너희들은 염소?

한적한 동물원 전경

펠리칸 같이 생긴 새도 있고

오리들도 노닐고 있다

순한 당나귀들

풀을 받아먹는 원숭이들

토끼들이 마지막


아, 사진에 등장한 이집트인 직원 아흐마드는 일주일에 한 번, 개인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학생이다. 전에 룩소르 한식당에서 일한 적이 있어서 한국에 관심이 많고, 코이카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영어도 잘 해서 우리 학생들보다는 가르치기 편하고. 나도 룩소르 생활에 이런 저런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이번 주에는 '마흐쉬'라는 이집트 음식을 집에서 만들어 보았다. 마흐쉬는 속을 파낸 가지, 애호박, 피망이나 양배추와 포도 잎 같은 것에 토마토, 양파, 향신료 등으로 양념을 한 쌀을 넣어서 익힌 음식인데,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는 것 같다. 레시피에 기름이 들어가지 않아서인지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는 좀 담백한 맛의 마흐쉬가 만들어졌다. 만든 날에는 저녁으로 따끈하게 먹고 남은 것은 ACE에 자원활동을 하러 가는 길에 점심 도시락 삼아 가져갔었는데, 현지인 직원이 직접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워했다. 하긴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이 직접 김치찌개 끓인다고 하면 좀 신기하겠지? 

속을 채운 피망과 마늘+토마토 소스

밥이 연잎밥의 찰기있는 밥처럼 쫀득해서 맛있었다


요즘 들어 대추야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이것 저것 만들어 보고 있다. 한국에서는 구하기 쉽지 않은 재료이지만 여기에서는 정말 흔한 것이다보니 가격이 저렴하고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레시피도 꽤 다양해서 괜찮은 것들을 골라내는 중이다. [대추야자 포스팅 : 2011/11/02 - [풀먹는곰파/곰파의부엌] - 신의 선물, 대추야자와 그 활용법]

1kg 짜리 대추야자

대추야자로 만든 달다구리


금, 토요일에는 카이로에 있는 동기 단원 언니가 룩소르에 잠깐 놀러 와서 함께 집에서 밥도 먹고, 룩소르 시내 구경도 했다. 카이로에 비하면 정말 시골에 가까운 작은 동네이다 보니 언니도 며칠 사이에 룩소르 지리를 다 파악한 것 같았다. 요즘 들어 날씨가 정말 많이 시원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언니와 동행 분이 룩소르의 더위에 지쳐하는 걸 보면 여기가 확실히 덥긴 한 모양이다. 이제 곧 겨울이 되면 정말 살기 좋은 룩소르를 경험할 수 있겠지 :)

다음 주까지 수업을 하고 나면 '아이드 일 아드하'라는 이슬람 명절 때문에 일주일 정도 휴가를 갖게 된다. 특별히 어디를 갈 계획은 없는 상태고, 평소와 다름 없이 운동 가고 집에서 밀린 포스팅, 독서, 요리, 베이킹- 이런 것들을 하며 여유를 즐기고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