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11년 12월 19일 월요일 ~ 12월 25일 일요일


업무

이번 주 수업을 끝으로 2011-2012 가을학기가 마무리되었다. 10월부터 시작해서 두 달 조금 넘는 기간에 불과한 짧은 학기였지만 새로운 학생들을 맞아 처음으로 한글을 가르쳐 보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 터라 나에게는 그리 만만하지 않은 학기였다. 열심히 하는 학생들을 보며 힘을 얻기도 했고, 어떻게 해도 발전하지 않을 것 같은 학생들의 모습에 좌절을 하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우리 학생들의 한국어 실력이 조금씩은 늘지 않았나 싶다. 시험 후에는 잠깐 휴식을 취하면서 다음 학기 준비도 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관광 한국어 교재를 만드는 데 집중을 해야 할 것 같다. 물론 방학이라고 그냥 쉬면 애들이 또 한국어 싹 까먹고 올 테니까 보충수업도 해야겠지 :) 


생활

이번 주는 이집트에서 보낸 기간 중에 가장 바쁜 한 주였던 것 같다. 물론 한국에서 말하는 것처럼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정도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성탄절이 있고 연말을 앞둔 때이다 보니 이런 저런 모임이 많아서 나름 정신 없이 보냈다. 사실 이집트 기독교에서는 1월 7일이 예수님이 탄생한 날이라고 믿기 때문에 12월 25일은 여기 사람들에게 특별한 날이 아니지만, 룩소르는 워낙 관광객이 많다 보니 호텔이나 식당에서는 크리스마스 특수를 맞아 특별히 장식을 해 놓는 경우가 많다. 내가 운동을 하러 가는 졸리빌 호텔에도 과자로 만든(!) 이층집을 로비에 전시해 두어서 근처에 가면 달콤한 과자 냄새가 솔솔 났다.

동화에서나 봤던 과자로 만든 집

달달한 냄새를 풍기는 진짜 과자

귤과 땅콩도 함께 놓여있다


화요일에는 샘하우스에 갔다가 좀 이른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 샘이 새로 나온 카르투쉬 목걸이를 하나 선물해 주었는데, 나는 따로 선물을 준비해 간 것이 없어서 미안했다. 평소와 같이 함께 맛있는 음식도 먹고, 수다를 떨다가 돌아왔다. 참, 콜리플라워는 항상 찌거나 볶은 것만 먹어 보았는데 이 날 먹은 튀긴 콜리플라워는 색다른 맛이 있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튀긴 콜리플라워, 튀긴 가지(가지는 정말 기름을 엄청 흡수한다!) 등을 보면서 왜 여기 사람들이 배가 볼록하게 나오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P

튀긴 콜리플라워

튀긴 가지

차가운 토마토 수프

메리 크리스마스!

좋은 의미를 가진 상형문자들로 만든 카르투쉬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저녁 7시에 교회에 갔다. 성당에서는 밤 10시에 성탄 미사를 드리는데, 10시에 혼자 미사를 드리고 돌아올 것을 생각하니 좀 무서워서 갈 수가 없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교회에 온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대추야자 초콜릿에 성경 말씀이 적힌 쪽지 하나씩을 붙인 것을 선물로 가져갔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아서 만든 보람을 느꼈다. 한국에서라면 하나 하나 자르고 붙이고 손으로 글씨를 써서 만들었겠지만 여기에서는 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워서 (솔직히 말해 귀차니즘도 있었고) 올해 말씀달력을 잘라서 사용했다. 다행히 한국어와 영어가 함께 적혀 있어서 사람들이 이해하는 데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말씀사탕 뽑기의 즐거움은 국경을 초월하는 것인지 다들 자기가 뽑은 성경구절을 보면서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내가 뽑은 말씀은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십시오.(1티모 6,11)'였는데, 문득 학교에서의 내 모습이 생각나서 반성을 하는 계기도 되었다. 참고로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를 뽑은 사람은 대체 얼마나 어둠의 자녀로 살고 있으면 이런 말씀이 나오겠느냐며 놀림을 받았다는 :)  

준비한 선물

대추야자 초콜릿에

말씀쪽지를 하나씩 붙인 것

크리스마스 이브

드디어 하얀 초에 불을 밝혔다

맨 마지막에는 함께 촛불을 밝혔다

앞마당에 마련된 구유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는 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갔다. 마찬가지로 대추야자 초콜릿을 가져갔는데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사람이 너무 많이 와서 그냥 나누어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장 선물을 받아야 할 것 같은 아이들에게 주기로 혼자 결정하고 아이들을 인솔해 오신 수녀님께 드리고 왔다. 미사를 드린 후 잠시 근처 카페에 들러 책을 읽다가 12시에 프란체스코 회 수사님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다시 성당으로 갔다. 지난 주에 판공성사를 드리면서 신부님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크리스마스 날 가족도 없이 혼자 있는 외국인이 불쌍하게 보였던 것인지 감사하게도 점심식사에 초대를 해 주신 것이다. 고기를 먹지 않는 터라 모든 음식을 맛 볼 수는 없었지만 평소에 좋아하는 아이쉬, 오이와 토마토, 치즈와 사진에는 없는 버섯 파스타 등을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식사 후에는 짧은 아랍어와 가물가물한 프랑스어를 총동원해서 대화를 나누다가, 수도회의 모든 수사님들은 이집트 분인데(나는 이탈리아에서 오셨나 생각했었다) 이탈리아에서 공부를 하셨기 때문에 이탈리아어를 잘 하시는 것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날 아침, 성당

예쁘게 꾸며진 제단

아기예수님

성당 오른쪽 벽에 마련된 구유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구유

바깥에도 구유가 장식되어 있었다


성당에 붙어있는 수도원 2층에서

식사 전에 먹은 피스타치오의 흔적

짜잔 식사시간입니다

채식인의 소박한 접시 (물론 더 먹었음!)


25일 저녁에는 J언니의 생일을 미리 축하하기 위한 단원 모임이 있었는데, 언니 선물을 사러 '하비바 [2011/08/05 - [길위의시간/이집트통신] - 예쁜 수공예품을 파는 곳, 하비바]'에 들렀다가 내 선물도 함께 샀다. 이태리 장인이 아니라 이집트 여성들이 한 땀 한 땀 수 놓은 컵받침인데, 일단 디자인이 마음에 들고 또 현지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다는 의미도 있어서 더 좋았다. 전부터 눈여겨 봐 오던 것이지만 명분이 없어서 못 사다가 크리스마스를 핑계 삼아 이번에 산 것인데 예쁜 컵받침을 깔고 차를 마시니 괜히 차가 더 맛있는 느낌이랄까. 행복이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 사소하지만 나의 행복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라면 바로 들깨가루가 되겠다. 지난 주에 받은 한국에서 온 들깨가루를 드디어 개봉해서 들깨된장국을 끓여 먹었는데, 아까워서 많이는 못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맛있었다. 요즘 가장 생각나는 음식 두 가지가 입구역 식당 '산채'에서 먹던 버섯찌개(산채의 버섯찌개는 좀 특이하게도 고추가루를 넣은 매콤한 찌개가 아니라 들깨를 넣은 담백한 찌개다)와 녹두거리에서 집에 올라가는 길에 있는 식당에서 자주 먹던 들깨순두부였는데 드디어 그 비슷한 맛을 볼 수 있었다. 채식을 하기 전에는 자주 먹을 일이 없었고 고로 특별히 좋아하지 않았는데, 채식을 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보물이 바로 들깨-라고 쓰다 보니 너무 거창한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진짜로 좋아한다 크크.

들깨로 맛을 낸 된장국

보기에는 좀 그래도 산채비빔밥

풀죽은 양상추 겉절이와 오이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는데 케이크가 빠져서는 안 될 일이다. 금요일에 점심 초대를 받아 한국 사람들과 함께 먹기 위해 만든 호박케이크, 일요일에 수사님들에게 갖다 드리기 위해 만든 생강파운드케이크, J언니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초코케이크 이렇게 총 3개의 케이크를 만들었다. 호박케이크는 전에 한 번 만들었는데 맛있었기 때문에 믿고 만든 것이고, 초코케이크는 전에 만들어 본 것에다가 이번에는 초콜릿으로 윗면을 입혀 변화를 주었는데 내 생각보다 초콜릿이 너무 두껍게 씌워지긴 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좋다는 반응도 있었다. 생강케이크는 맛을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호박케이크

트리와 양말, 별로 장식

폭신하고 촉촉한 케이크가 완성

생강파운드케이크

아이싱을 입혔는데 좀 묽게 만들어졌다

초코케이크

생각보다 초콜릿이 너무 두꺼웠다

거의 지붕과 같은 초콜릿


아무튼 이번 한 주는 맛있는 것을 만들어 사람들과 함께 먹고 나누면서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동안 훌쩍 지나가버렸다. 다음 주면 2011년을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게 된다. 그 전에 올 한 해를 돌아보고, 더 나은 한 해를 계획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