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11년 4월 25일 월요일 ~ 5월 1일 일요일



업무


월요일은 이집트의 공휴일이어서 수업이 없었다. '봄의 날'이면서 시나이 반도를 찾은 기념일이라고 하는데, 봄의 날이라고 하기엔 룩소르의 날씨는 이미 여름에 가깝기 때문에 좀 이상했다. 주변 도시에서 시위가 있어 기차가 운행하지 않는 바람에 고향에 갔던 3학년 학생 중 한 명이 돌아올 수 없어 3학년 수업은 미뤄져서 지난 주와 똑같이 수업 3개만 있었다.

4B 관광한국어 수업에서는 룩소르의 대표적 유적지인 '카르낙 신전'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복습하면서, 내가 따로 '이집트의 음식'에 대해 준비를 해서 가르쳤다. 가이드가 되어 한국 사람들을 만난다면 이집트의 음식 중에 뭐가 맛있는지 이야기를 할 줄 알아야 할 텐데, 지난 시간에 학생들에게 시켜 보니 당췌 '맛있다'는 말 말고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는 무엇을 재료로 이러쿵저러쿵 만든 음식인데, 이러저러한 맛이다'하는 식으로 텍스트를 만들고 학생들에게 들려준 다음 그것이 무슨 음식인지 맞춰보게 했다. 4B반 학생들은 한국어도 잘 하는 편이고 의욕적이기 때문에 수업을 하는 보람이 느껴지는데. 열심히 하면 더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더 잔소리를 하게 된다. (나는 아마 무서운 김선생님이 될 것 같다.)

4A 관광한국어는 4B반에 비하면 진도가 늦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학생들의 한국어 수준 자체가 역사와 건축 등의 어려운 내용을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예 가르치지 않을 수는 없으니 일단 지금의 수준에서 가능한 정도의 설명을 외우게라도 하는 것이 최선인 것 같다. 또 하나, 학생들의 발음이 너무 부정확해서 그나마 아는 말도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는 문제가 있어서 수업 중에 발음 교정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본문을 mp3 파일로 만들어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듣고 따라하게 해야 할 것 같아 녹음을 하려고 하니 나도 정확한 발음을 잘 모르는 단어들이 있어 사전에서 확인해야 했다. 역시 가르칠 때 가장 많이 배운다는 말은 진리인 것 같다.

2학년 학생들은 나름 발음도 잘 하고 문법 설명도 금방 알아들어서 수업할 때 재미가 있다. 이 날 수업에서는 두 명 밖에 없어서 거의 과외하는 느낌이었는데 학생들 자체도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분위기여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빠릿빠릿하고 의욕도 있는 아이들이라 발전 가능성이 꽤 있는데, 만약 4B반 학생들처럼 한국으로 연수를 다녀온다면 정말 장족의 발전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활


지난 주에 아팠던 이후로 월요일에도 계속 소화가 잘 되지 않아서 화요일에는 아예 단식 비슷하게 하루 정도를 굶어 보았는데 그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그 이후로 정상적인 상태가 되었다. 역시 소화기관에 문제가 있으면 좀 쉬게 해 주어야 하는 것인가 보다. 

화요일 저녁에는 룩소르 신전을 구경했고 수요일 오전에는 수업 하기 전에 서안(나일 강의 서쪽) 투어를 다녀왔다. 내가 있는 기관이 관광호텔 고등교육원이다 보니 학장님께 말씀드리면 유적지에 들어갈 수 있는 허가증을 발급해 주는데, 그 기한이 수요일까지라 급히 다녀오게 되었다. [2011/05/06 - [길위의시간/이집트통신] - 룩소르 신전과 서안의 유적들] 놀러가는 것이라기 보다 앞으로 학생들에게 가르칠 내용을 예습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목요일에는 룩소르에 있는 단원들을 초대해서 집들이를 했다. OJT 기간에 선배단원들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밥을 먹으면서 인사를 하고 싶어서 나름 비장의 카드인 도토리묵 가루를 꺼내어 묵도 만들고 열심히 요리를 했다. [2011/05/06 - [풀먹는곰파/곰파의부엌] - 곰파의 채식밥상 #1 집들이 상차림]

금요일에는 미국인 목사님이 하시는 성경공부 모임에 다녀왔다. 어차피 영어로 하는 거라서 개신교니 천주교니 하는 구분은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다른 단원들을 따라 참석했는데, 한국식의 '목사님'과는 너무 다른, 친구 같은 목사님이라 분위기가 편안하고 좋았다. 이 날은 창세기 1장과 2장을 읽고 궁금한 점과 흥미로운 점 등을 함께 나누었는데, 늘 도마 위에 오르는 대목인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는' 장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들을 수 있어 재밌었다. 이 모임의 분위기가 좋아서 일요일에는 영어 예배에도 갔었는데, 마침 설교에서 나온 성경 말씀이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묻는 부분이었다. 그 말씀 자체로도 생각할 것이 많았는데 마음에 와 닿는 브라이스 목사님의 설교 덕분에 더욱 풍성한 시간이 된 것 같다. 원래 저녁에는 6시 미사를 갈 생각이었는데 4시 반쯤 깜빡 잠이 들어서 가지 못 해서, 다음 주부터는 오전 9시 미사를 드리고 10시 반 예배를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난 주에 비하면 훨씬 몸과 마음이 안정이 되어서 참 좋다. 수업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깨끗하게 정리된 집에서 요리를 하고 빵도 만들고, 사람들과 만나 가치있는 것을 나눌 수 있는 시간. 물론 내내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행복을 느끼는 감각이 좀 더 예민해진 것인지 아니면 행복의 기준치가 낮아진 것인지, 어느 쪽이 되었든 나는 '행복한' 한 주를 보낸 것 같다 :)